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눈 치우는 일이 즐겁다.
흠집 하나 없는 흰색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는 프린터에 A4용지를 채워 넣을 때와 가끔 모니터가 토해내는 글자 하나 없는 빈 편집화면이 전부다.
내가 소위 출근해서 하는 것들이라고는 그 무결점의 백색 공간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미가 담긴 글자와 그림, 다양한 기호로 채워 넣는 일이라고 정의했을 때,
지금 빗자루를 든 채로 마주하고 있는 이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
그래 나는 눈을 쓸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채워 넣고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눈 닿는 모든 곳이 하얗게 물든 장면을 볼 때면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모니터의 빈 화면을 볼 때의 바로 그 설레임과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며 끝 없는 공상에 잠기는 것으로도 행복한데
과연 한 눈을 파는 것은 꽁꽁 얼어 붙은 눈을 뒤 늦게 치우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일까?
이번 겨울만큼은 정말 여한 없이 눈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리석던 말던...
그렇지 스쿠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