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를 하며 아이들과 오붓히 이야기를 나눌 때입니다.
친구가 학교에 가져온 롤러보드로 그 친구도 하지 못했던 묘기를 처음 타면서도 연거푸 성공했다고 자랑을 하는 첫 째!
그리고 자신도 장난감을 학교에 가지고 가서 논다고하자 아빠는 왠지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는 마음에 그러는 것이 아닌가하여 다음부터 장남감은 두고 가라고 나무랍니다.
그런데 이 문제로 아이들과 "되네 안되네"하며 설전이 오가고 갑자기 저녁식탁이 열띤 토론의 장으로 변합니다.
아빠는 다른 아이들도 장난감을 가져오고 싶지 않겠냐며 모두 다 그렇게 하게되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등등 잔소리를 늘어 놓으면
아이는 쉬는 시간에 서로 가지고 노니 꼭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그러자 아빠는 "어렸을 적의 한"을 떠올리며 네가 가진 장난감과 같은 것을 가지지 못한 아이는 얼마나 부러워 할 것이며 자신에게는 그런 장난감이 없어 불행한 기분이 들지 않겠느냐며 상대적 박탈감을 언급하며 팽팽히 맞섭니다.
심지어 여기에 더 이상 반박을 못하도록 얼마전 사례를 떠올리며 직격탄을 날립니다.
"너도 다른 친구의 멋진 침대와 공부방, 그리고 상냥한 오빠를 부러워하지 않았니? 너의 그 때 기분을 떠올려봐! 어땠어?"
토론은 갑자기 행복에 대한 훈계로 이어지고...
마침 "꾸뻬씨의 행복여행"에 나온 문구가 기억나 "행복해지기 위한 목록" 중 일부를 이야기 해줍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는 것!"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둘 째가 말을 꺼냅니다.
자신은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 같다며 마냥 신기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합니다.
아직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는데 세상 이치나 규칙을 깨닫고 이해하려는 모습이 기특합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 그와 같은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정말 행과 불행이 번갈아 일어나는걸까요?
어른이 된 지금,
삶에 그런 규칙 따위는 없다고 냉정하게 결론을 낼 수 있다면 과연 어린아이들에게 삶이 그렇게 비춰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배고픈 고통을 겪어 봐야 배부름에 행복할 수 있고, 깊은 슬픔 뒤에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차근히 이야기 해주면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그 궁금증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대신하여
그 날 아이가 행복했었던 이유를 사례로 그와 같은 (행복한)감정이 찾아 오게된 이유를 이야기 해줍니다.
"가만히 있어도 찾아오는 두려움, 고통, 불안, 우울함 따위와는 달리 행복, 기쁨, 만족감 같은 것들은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단다.
예를 들어 네가 어제 딱지를 구입하고 개봉을 해보니 생각지 않게 희귀한 "검은색" 딱지와 "왕딱지 한 개 더"를 받았던 것은
어제 누나와 달리기 승부에서 열심히 달려 이겼기 때문에 아빠가 상으로 준 용돈으로 구입하게 된거고 거기에 행운이 더해져서 얻게된 행복아니겠니?
그러니 다음 행복을 위해 친구들과 노는 것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
문득 내가 아이에게 했던 말을 곱씹으며 과연 그런 나는 앞으로 찾아올 행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건지 고민에 잠긴다.
안녕하지 않은 사회를 바라보며 그냥 참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안녕을 바라고 있는것은 아닌지...
남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