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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졸업을 앞둔 딸에게...



2003년 강남의 빌딩숲 한 복판에서 태어난 네가 산과 개천으로 둘러싸인 농촌 초등학교에서 졸업을 하게 될 줄은 아빠인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구나.



당시에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네가 부모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도시에서의 생활은 좋은 말로는 활력이 넘치는 곳이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경쟁이 지배하는 다소 삭막한 환경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란다.


아침 출근길 전철 승강장과 버스 안에서의 숨막히는 사투, 

조금이라도 앉아서 가기 위한 눈치 보기, 

교통혼잡 속에 지각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점심시간에도 긴 줄을 서지 않으려고 서두르는 습관, 

남들 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한 경쟁심, 

그로인한 야근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술자리, 

그러면서도 지친 몸을 가누며 막차를 놓칠까 서두르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상상해 보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삐 뛰어가고 있을까?

누가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바쁘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것일까?

나 자신이 세상의 도구가 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게끔 만드는 삶은 어떤 것일까?



평생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지혜보다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짧은 유통기한을 가진 지식과 치열한 경쟁만을 우선시하는 교육!

이런 것들에 대한 불신이 너를 지금의 학교에 데려오게된 계기라고 말할 수 있단다.



따뜻한 봄이 오고 더운 여름을 견디며 풍성한 가을을 만끽하고 눈 덮힌 겨울을 보낸 6년의 시간을 들러 보거라.

변함없는 정직함에 믿음과 신뢰가 가지 않더냐?




이런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절대 혼자서 살아 갈 수 없는 존재란다.





아마도 같은 질문에 항상 같은 대답만 하는 친구의 지루함 보다는 

때로는 슬픔과 분노를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행복과 웃음을 던져주기도 하는 예측 불가능한 친구가 차라리 훨씬 더 매력적이게 느껴지지 않을까?



승마장에서 장애물을 뛰어 넘어 우승을 차지할 때의 감동을 잊지 않았겠지?

아빠도 잊지 않고 있는 그 순간의 행복은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학교에서 배웠던 것 처럼 함께 돕고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이야말로 네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지식이란다. 



살아가면서 항상 행복한 순간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렇지 못한 시간들을 지혜롭게 넘어가는 방법도 익혀야 한단다.

장애물 경기에서 우승의 비결은 경기에 앞서 각기 다른 장애물들의 높이를 파악하고 복잡한 경로를 분석하며 머리에 새겨 넣는 것이고, 함께 뛸 다양한 말들의 성격과 습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경기에 임해서 적당한 기술을 적절하게 발휘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니?


인생이라는 종목도 결코 다르지 않단다.

그동안의 학교생활에서 네가 반드시 뛰어 넘어야 할 장애물들을 배웠고 함께 해야 할 말들과 친해지고 서로의 습성을 파악하는 방법들도 배웠을거야.

그리고 이제 다음 단계의 배움을 위해 지금은 조그맣게 변한 경기장에서 애정 깊었던 코치님들과 말들을 뒤로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지.




지금까지 잘 해냈다.

더 큰 경기를 위해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순간에 서있는 네 모습을 그려보거라.




열심히 노력하고 여기에 약간의 운만 더해진다면 항상 우승을 하지는 못 할지라도 너만을 위한 날은 꼭 찾아 올 것이라고 아빠는 확신한단다. 

더 큰 도약을 위해 변함없는 열정과 끈기가 함께 하기를 바라고 함께 어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또 기대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