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주위 풍경이 더욱 선명히 드러납니다.
산으로 깊게 둘러 싸인 지리적 특성이 여타 휴양림과는 대조적으로 안락감을 더해줍니다.
특히나 강원도 두메산골의 험하고도 끝을 알 수 없는 규모에 비하면 다소 규모가 작아 그런 것 같습니다.
조그만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길 주위로 야영을 위한 데크와 계수대가 옹기종기 마련되어 있고
휴양관 앞에 넓게 형성된 물 웅덩이에 마련된 수영장이 여름철 좋은 물놀이장 역할을 해줄 것 같습니다.
봄의 초입에 들어서고도 남을 3월 끄트머리의 아침 산책치고는 휘몰아치는 바람이 다소 부담스럽습니다.
운문산 자연휴양림을 나서며 높지는 않지만 주위를 굽이치는 산을 지나쳐 내려오니 여기저기 미나리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가 보입니다.
일반 수경재배를 통해 대량으로 재배되는 미나리와는 달리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땅에 뿌리를 박고 재배하는 미나리라서 직접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그 맛과 효능이 좋다고 합니다.
청도의 와인터널과 바로 가까이에 위치한 소싸움경기장 관람일정은 아이들은 물론 그 부모들도 처음!
항상 이맘때면 청도 소싸움의 생생한 모습이 TV화면과 지면을 장식하지만 게으름과 휴식에 대한 유혹을 물릴칠 만큼 매력적인 콘텐츠는 아니었던가 봅니다.
겨울 내내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유난한 날씨 탓인지 다소 서늘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와인터널에 들어서자마자 오히려 포근함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간대나 주말을 피한다면 연인 사이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크고 작은 다양한 색상의 조명이 이른 아침 낯선 어둠속에 묘한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감으로 만든 와인을 시음하며 입과 코도 즐거움을 맛 봅니다.
이곳에서 구입한 화이트 와인을 한재미나리 삼겹살과 함께 먹는 것도 괜찮다는 어느 블로그 포스팅이 생각나는군요.
이런 분위기와 조명 탓인지 아이들과 남성들 보다는 여성 방문객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와인터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소싸움 경기장은 TV속에 비친 모습과 달리 오전시간과 쌀쌀한 날씨 탓인지 많지 않은 관람객들로 약간은 썰렁한 분위기 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앞서 진행된 경기들이 모두 한 쪽의 일방적인 우세로 일찍 종료되어 이런 분위기가 더해진 탓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우리 가족만이라도 반전시키기 위해 계획에 없던 우권을 구매해 아이들 각자에 하나씩 쥐어줍니다만
역시나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둘째가 배팅한) 소의 배신으로 30초만에 허탈하게 끝납니다.
졌다는 왠지 모를 상실감에 빠진 둘째를 달래는 난감함까지 더해집니다.
이런 실망감을 가지고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뒤 이은 매치를 위해 대기 중인 소들의 상태를 보니 서로가 호락호락 끝날 것 같지 않은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집니다.
한 게임을 더 보고 가자는 아빠와 그냥 일찍 집에 가자는 엄마 사이의 승부는 소싸움의 승부만큼 짧은 시간에 아빠의 승리로 결정!
승부 보다는 배당률이 높은 상대를 선택함으로서 약간은 무모한 선택으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해 봅니다.
앞선 경기 모두 배당이 높지만 그만큼 승률이 낮은 소들이 항상 패했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서도 반전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던 베팅...
이번에도 예상대로 끝나게 되면 별로 좋이 않은 추억으로 남을 확률이 높은 베팅이었지만
경기전 승부를 앞두고 대기 중인 소들을 지켜보며 이를 평가하는 첬째의 의미심장한 한 마디도 선택의 당위성을 제공합니다.
"지금 힘을 비축하고 있는 거야!"
앞 발굽을 지치며 금방이라도 덤빌 것 같은 승률이 높지만 경험이 적은 소에 비해 차분히 서서 대기하고 있는 경험 많은 소를 가르키며 말합니다.
이럻게 해서 결정된 5천원짜리 우권을 가지고 우리 가족의 마지막 관람은 시작되는데
예상과 달리 두 소의 대전은 팽팽하여 3차례 이상의 접전에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
열심히 홍색 소를 응원합니다.
소싸움은 경기 시간에 제한이 없고 1:1 단판승제로서 한 마리가 머리를 돌리고 도망치는 상황이 나올 때까지 계속됩니다.
나름 투지가 보이는 홍색 소의 선방에 우리 가족은 흥분의 도가니~
이제는 지면 어찌되나 하는 걱정은 사라지고 머리 속에는 벌써 우승시 5배가 넘는 배당금을 생각하며 아빠는 벌써 자리를 박차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관람석에서도 일제히 함성이 터져나오며 접전이 거듭 될수록 긴장이 감돕니다.접전 사이에 상대 소가 서로 거리가 멀어지기라도 하면 양측 조교사들이 경기를 위해 풀었던 코뚜레를 다시금 연결하고는
서로 가로질러 가며 양 소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장면이 더욱 긴장감을 줍니다.
이렇게 1시간 같은 3분여가 지났을까 아빠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경험 많은 우리편 소는 마치 힘이 다해 지치기라도 한듯이 멀찌감치 등을 보이고 도망을 가버리고 맙니다.(아쉬움 속에 사진을 못찍음)
혹시나 하는 행운은 사그러들었지만 청도 소싸움 경기장에 방문해 얻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전 경기를 마지막으로 일찍 집으로 돌아섰다면 아이들에게도 별 감흥이 없는 전통 소싸움이 되었겠지만
집에 돌아온 다음날 몇 번이나 전화해 "무슨(청도) 소싸움이었지 엄마?"를 묻는 것이 다음 날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전해 줄 멋진 이야기거리를 얻어 만족해 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소싸움 경기장에 가시게 되면 한 두 경기 관람만으로 아쉬울 때, 소액이라도 우권을 구매해서 이런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포스팅하는 지금, 다시 떠올려 보니 CW레스토랑에서의 환호와 탄성에서 시작된 여행이 청도 소싸움 경기장에서의 환호와 탄성으로 마무리되어 영화로 비유하자면 흥행에 성공한 여행이었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처럼 여운을 남긴 여행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