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서 문자 가르치는 나라는 한국뿐" 이라는 다소 과장되고 자극적인 타이틀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당장에 우리 아이의 교육방식을 "잘못된 교육"에서 "바람직한 교육"으로 바꿨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우리 아이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 다른 아이들은 남들 보다 앞서기 위해 또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혹은 지나친 관심으로)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고 역시 가정하자.
이 아이들이 자라서 공교육의 울타리에 같이 모여 생활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신 보다 많은 것을 아는 듯한 그런 아이들과 너무 다른 자기 자신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신감이 결여되거나 따돌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바람직한 교육"이 아이를 방치했다는 비난과 아이의 고통속에 정말 바람직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저런 기사는 마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지적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정말 몰랐던 사람에게는 마치 대문을 열 수 있는 자물쇠는 쥐어줬지만 그 너머에 지키고 있는 사나운 개는 이야기 해주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이미 사회 전반에 뿌리 깊숙히 박혀져 있는 사교육의 행태에서 우리 아이들을 벗어나게 하려면 실상 더 많은 것을 준비하고 각오해야한다.
몇 줄 안되는 기사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어설픈 시도만으로는 아이들과 부모에게 상처만 안겨줄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위한 바람직한 교육"이 아닌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이 모두를 위한..."이 더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공교육의 현실에서 절대 남들과 다른 나만의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차별화된 교육환경에 부모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만 이마져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가 쉽지않다.
생각해보자,
학원만 5~6군데 다니게 했던 초등학생 학부모가 잘못된 자신의 교육방식을 뒤늦게 후회하고 좀 더 아이를 위한 교육환경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곳은 이미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자신과 같은 학부모가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교육과 치료가 병행되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의 분포는 일반 교육환경에서의 그것 보다 더 높을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유독 평범해 보이는 자신의 아이 또는 다른 자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홈스쿨을 하는 한 부모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현대사회에서 부모들의 원할한 경제활동을 위한 연장선상에서 단체교육은 아이들에게 사회적관계를 익히는 장점 이상으로 더 많은 단점과 병패를 가지고 있다고...
흔히들 사회성이 좋다는 기준을 친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대인관계는 어떠한지를 가지고 논한다.
하지만 정작 사회성은 그러한 기준과 달리 "얼마나 남을 배려하는가"에 좌우된다고 한다.
즉 내가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항상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질수록 사회성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우리의 교육현실은 홈스쿨을 하는 학부모가 지적했듯이 사회성을 키우는 곳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잘못된 점만 배우게 되는 그런 곳인게다.
우리가 흔히 통칭해서 말하는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특효약이나 해법은 없다.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자주 대화를 나누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습관을 가지는 것
그래서 현재의 상황에서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바꾸어 보자.
p.s. 위 기사 중에 3세의 나이는 더 큰 수로 올려도 좋다. 아무튼 위 텍스트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것 같다.
끈이나 냄비가 따위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자연이야 말로 아이들의 무궁한 상상력과 호기심 그리고 관찰력을 키워주는 보고이다."
■ 책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
핀란드·독일·독일 등 유치원 문자교육 금지… 가르치면 교사에 경고받기도
올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홍민경(35ㆍ가명)씨는 담임 교사로부터 반 아이 중 한글을 모르는 게 자신의 딸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주변 학부모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가 "학습지 하나 안 시키고 뭐했냐"는 타박만 들었다는 홍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읽기, 쓰기를 배우도록 되어 있지 않냐"며 "외눈박이 원숭이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조기 교육이 대세처럼 굳어지면서 유아기에 국어는 물론 영어, 수학도 웬만큼 배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 고시는 유치원에서는 읽기, 쓰기를 배우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형주 교과부 유아과장은 "조기 교육에 대한 폐해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고 일선 유치원에서 교육 과정에 맞는 수업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의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주로 방과후 학습을 통해 이뤄지는 선행학습까지 막기는 어렵다"며 "유치원 입학 전에 어린이집 교육이나 학습지 등을 통해 독서교육은 물론 영어, 수학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이 같은 과열된 조기 교육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상이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본부 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읽기, 수학,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1, 2위를 하는 핀란드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 단계에서는 문자 교육조차 철저히 금지돼 있다"며 "이 시기에는 집중력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문자 교육이 오히려 집중력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일권 한국특수교육연구소장도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초등학교 취학 전 문자 및 수 교육이 금지돼 있고 일부 국가는 위반 시 형사 처벌까지 한다"며 "특히 영재교육법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에서도 유치원 과정까지는 문자나 수를 결코 가르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자녀를 현지 유치원에 보냈던 김미정(35)씨는 아이에게 알파벳과 숫자를 가르쳐 보냈다가 담당 교사로부터 "잘못된 교육을 하고 있다"며 경고를 들었다. 독일에서 자녀가 유치원 교육을 받은 이길동 계명문화대 유아교육과 교수는"독일 유치원은 문자나 수를 가르치지도 않고, 학교도 예습을 문제로 지적한다"며 "5살 된 딸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키려 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있는데 뇌 발달 단계를 고려해 지나친 조기 학습을 금기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엄정애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태어나자마자 영어니 독서니 교육 경쟁을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였는데 일본에서는 최근 독일 등의 자연주의식 유아교육법이 정착되어가는 추세"라며 "기본적인 인지능력도 떨어지는 아이에게 문자나 수를 주입하는 것은 정서 발달에도 안 좋고 교육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홍은숙 나사렛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는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바로 알파벳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흙도 밟아보지 않은 아이에게 땅이란 단어부터 가르치는 건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http://media.daum.net/society/education/view.html?cateid=1012&newsid=20110401060538747&p=hankooki
이 글을 읽고 당장에 우리 아이의 교육방식을 "잘못된 교육"에서 "바람직한 교육"으로 바꿨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우리 아이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 다른 아이들은 남들 보다 앞서기 위해 또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혹은 지나친 관심으로)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고 역시 가정하자.
이 아이들이 자라서 공교육의 울타리에 같이 모여 생활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신 보다 많은 것을 아는 듯한 그런 아이들과 너무 다른 자기 자신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신감이 결여되거나 따돌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바람직한 교육"이 아이를 방치했다는 비난과 아이의 고통속에 정말 바람직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저런 기사는 마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지적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정말 몰랐던 사람에게는 마치 대문을 열 수 있는 자물쇠는 쥐어줬지만 그 너머에 지키고 있는 사나운 개는 이야기 해주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이미 사회 전반에 뿌리 깊숙히 박혀져 있는 사교육의 행태에서 우리 아이들을 벗어나게 하려면 실상 더 많은 것을 준비하고 각오해야한다.
몇 줄 안되는 기사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어설픈 시도만으로는 아이들과 부모에게 상처만 안겨줄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위한 바람직한 교육"이 아닌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이 모두를 위한..."이 더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공교육의 현실에서 절대 남들과 다른 나만의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차별화된 교육환경에 부모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만 이마져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가 쉽지않다.
생각해보자,
학원만 5~6군데 다니게 했던 초등학생 학부모가 잘못된 자신의 교육방식을 뒤늦게 후회하고 좀 더 아이를 위한 교육환경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곳은 이미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자신과 같은 학부모가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교육과 치료가 병행되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의 분포는 일반 교육환경에서의 그것 보다 더 높을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 유독 평범해 보이는 자신의 아이 또는 다른 자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홈스쿨을 하는 한 부모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현대사회에서 부모들의 원할한 경제활동을 위한 연장선상에서 단체교육은 아이들에게 사회적관계를 익히는 장점 이상으로 더 많은 단점과 병패를 가지고 있다고...
흔히들 사회성이 좋다는 기준을 친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대인관계는 어떠한지를 가지고 논한다.
하지만 정작 사회성은 그러한 기준과 달리 "얼마나 남을 배려하는가"에 좌우된다고 한다.
즉 내가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항상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질수록 사회성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우리의 교육현실은 홈스쿨을 하는 학부모가 지적했듯이 사회성을 키우는 곳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잘못된 점만 배우게 되는 그런 곳인게다.
우리가 흔히 통칭해서 말하는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특효약이나 해법은 없다.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자주 대화를 나누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습관을 가지는 것
그래서 현재의 상황에서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바꾸어 보자.
"3세 이전에는 가급적 아기의 창의성을 죽이는 작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미 만들어진 자극(ready-made stimulus)은 안 주는 것이 좋다. 끈, 냄비, 풀만 줘도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내 큰 아이는 문자교육 안 시키는 보육기관에서 나무에 물이나 주며 자랐고, 둘째는 문자교육 하는 일반 유치원에 보냈다. 세 돌 때 버스가 지나가면 큰 아이는 '엄마 보라색 버스는 보라색 차고로 가네' 그랬다. 스스로 분류하고 모으고 다 했던 거다. 반면 훨씬 똑똑했던 둘째 아이는 '한일교통' 이러고 끝이었다. '글자 말고 다른 건 안 보여? 무슨 색이지?'하고 물어야 다른 걸 봤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원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http://media.daum.net/society/education/view.html?cateid=1012&newsid=20110401060539756&p=hankooki
p.s. 위 기사 중에 3세의 나이는 더 큰 수로 올려도 좋다. 아무튼 위 텍스트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것 같다.
끈이나 냄비가 따위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자연이야 말로 아이들의 무궁한 상상력과 호기심 그리고 관찰력을 키워주는 보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