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 번 읽고 책꽂이로 직행해서 다시 꺼내 들지 않는 여느 책과는 달리
일상에서 빠지는 도덕적 딜레마에 맞서 스스로 고민해 볼 때마다 들춰 보기에 아주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닥친 문제가 아마도 그런 첫 번째 사례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우면서도 냉정하게 고민해 봤습니다.
그 문제라 함은 유치원 정원 초과로 교육청에서 시정명령이 내려와 이미 입학식을 마치고 등교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을 추려서 하루 아침에 그만 다니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도 추첨으로 말이죠.
저자가 책을 내고 강의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고민하는 시민을 만드는 것, 그리고 이런 시츄에이션에 비판의 시각과 정말 무엇이 좋은 해결책인지에 대해 좀 더 차분하고 철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곳에 개인적인 생각을 장황하게 나열 하는 것 보다 책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의 몇몇 글을 빌어
나름 이 문제에 대한 저만의 결론을 조심스럽게 공유해 봅니다.
(참고로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가 여기서 설명하는 "분배의 정의"와는 상이하다 할 수 있지만 그 정의구현의 핵심은 다르지 않다는 판단하에 인용해 봅니다.)
"사회의 기본 구조를 규제하는 정의의 원칙은 도덕적 자격을 언급하지 않으며, 분배되는 몫도 그러한 자격에 좌우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 게임의 규칙이 정해진 상태에서 생기는 합법적 기대를 충족하느냐 충족하지 않느냐가 분배의 정의라 볼 수 있다면, 자신이 도덕적으로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빼앗긴다고 불평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서 "롤스"라는 사람은 도덕적 자격을 분배 정의의 기초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이명박씨는 법에서 정한 규칙인 대통령직을 수행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가라는 도덕적 의구심과는 별개라는 것 입니다.
우리는 나라가 정한 기준에 따라 교육시설에 아이를 보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을까요? 입학 후 정원 초과에 따른 행정조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 불평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 규칙을 바꾸거나 예외로 처리해 달라 주장할 근거로 볼 수 있을까요?
BBK사건과 같은 도덕적 문제점으로 인해 우리가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권리를 뺐는다면, 행정상의 실수로 모두가 따르는 규칙에 예외를 주장한다면 과연 그 도덕적 기준의 근거를 분배의 정의에 포함 시키는 것에 있어 문제점은 없을까요?
문제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 "롤쓰"의 주장입니다.
(그렇게 도덕적 기준을 강조하는 당신은 그런 주장을 펼칠 도덕적 기준에 적합한가? 모든 실수에 예외를 둔다면?)
우리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는 그 근거들은 사실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 그리고 태어난 환경과 배경, 심지어 노력의 결과 마져도 우연의 요소(실수도 포함해서)가 가미되어 있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 입니다.(보통 우리들은 노력의 결과를 공정하지 않다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만 말이죠. 자세한 내용은 책에...)
그러면 과연 이러한 분배의 정의에 도덕적 요소를 빼고 좀 더 정의롭게 다가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여기에도 "롤스"는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요소(분배의 정의에 있어 도덕적 딜레마:옮긴이)를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고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는 것에 동의하자고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 이슈가 되고있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의 발상이 우리 사회에서 부각되고 있는 여러 딜레마에 대한 대안이자 사회적 동의를 구하는 제안으로서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앞서 언급한 "롤스"의 주장대로
우리가 한 아이를 추첨에 의해서 탈락 시키는 것은 모든 학부모들의 생각 처럼 결코 도덕적이지도 않고 좀 더 바람직한 분배의 정의에도 맞지 않는 행위로 판단됩니다.
처음 이번 이슈에 관해 설명을 들으면서도 내린 결론이었지만,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여러가지 정의의 요소들,
즉 사회공동체의 연대감, 교육의 본질, 현재 사태가 발생한 동기와 저나 아이 엄마의 반발심의 동기 등을 놓고 볼 때도 한 아이의 운명을 단순한 우연에 맞기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손쉬운 해결책일 수는 있으나 공동의 이익과 자유에 대한 정의에서도 결코 부합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일을 좀 더 현명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준수하고 시행하는 교육기관 당사자들 보다는 학부모들 스스로가 나서서 공동의 이익이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고 판단이 되고 그러한 기준을 단순한 운이 아닌 우리 스스로 직접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정하고 이에 정의(?)롭게 따르자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 합리적인 기준 조차도 "롤스"의 방식대로 따를 것을 제안합니다.
(능력과 환경 그리고 배경 등의 모든 우연의 요소를 최대한 제외)
이에 동의한다면 이번 문제에 대해 공동의 이익을 위한 그 해결책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를 든다면 현지에 오래 산 주민을 우선하자는 제안은 자란 환경의 우연적 요소라는 점에서 정하고자 하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서도 이 후에 이사 온 많은 주민들로 부터 직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혜택(폐교가 되지 않은)의 수혜자가 아니냐는 주장을 낳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중요한 기준(공동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 아이를 위한 충분한 보상과 혜택의 마련과 함께)을 정하는 것에 있어
각자 고민하고 다 같이 심사숙고해 내린 결론에 자발적으로 동의 함으로서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울러 나름 생각해 본 기준을 적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왠지 말만 꺼내 놓고 해결책을 빠뜨린 글이 될 것 같아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을 적어 봅니다.
-공공의 이익에 우선이 된다고 판단 되는 경우 배려(공공의 선)
-학교가 정한 규칙에 위반되는 경우 제외(적법성)
-다자녀 및 형제, 자매 재학시 우선
-인접 대체 교육시설 유무
이렇게 우선순위도 감안해서 나열해 봤습니다.
사실 한 아이를 위한 배려가 저런 기준 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실 보다 득이 많은 조건으로 자발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 좋겠지만 그런 파격적인 제안이 다소 현실성이 떨어질 소지가 있어 아무튼 함께 논의 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이런 의견이 동의 받기 어렵거나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고민하는 시민으로서 나름의 생각들을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p.s. 이런 의견을 공유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라리 추첨이 상처를 덜 받지 않겠느냐" 라던지 어차피 결론을 내기 힘드니 그냥 추첨을 하자는 쪽의 의견이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