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임금노동은 모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노동이란 심히 모욕적인 것이라는 가치관이 형성되어 왔습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임금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말은 잘 사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임금을 벌기 위해서만 하는 노동이라는 것은 노예제와 별 다를게 없다는 가치관이 유럽에서는 확실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럽에서는 노동자가 기꺼이 자발적으로 고용제를 선택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면, 유럽 이외의 곳은 어떠한가. 유럽이 식민지를 만드는 최초의 단계에서 거의 반드시 강제노동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제3장에서 말했기 때문에 되풀이할 필요가 없을 것 입니다. 다만, 여기에 매우 상징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콜롬버스가 '신세계'에 도착했을 때, 그것은 아메리카 대륙이 아니라 카리브해 섬이었습니다. 가장 처음 본 섬을 그는 '이스파니오라'라고 불렀는데, 지금 그 섬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섬은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과 하이티 두 나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섬에는 '타이노'라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와 함께 왔던 당시의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처음에 거기에 도착했을 때 콜럼버스와 그 일행은 어쩌면 에덴동산으로 돌아온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토록 자연이 아름답고, 또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성서 속의 낙원 에덴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물건을 별로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더위 때문에 옷도 별로 입고 있지 않고, 거의 벌거벗은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농경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매우 뛰어난 농법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작물을 동시에 함께 심습니다. 그렇게 하면 관리를 하거나 손댈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밭에서는 일주일 중 몇 시간밖에 일하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먹고 싶으면 바다로 들어가면 곧장 얻을 수 있고, 그것도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면서 지내느냐 하면, 무엇보다 음악이 중요하였습니다.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시간,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혹은 이야기꾼이 모두에게 이야기를 하는 시간, 혹은 장식물을 만드는 시간. 그들은 대단히 솜씨가 뛰어나서 머리장식이라든가, 목걸이라든가, 귀걸이라든가, 다양한 것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즉, 예술활동인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인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성행위였습니다. 연인이 한몸이 되어서 이러저러한 온갖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을 별로 숨기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도 꽤 많았습니다.
콜럼버스 일행은 그들을 노동자로 부려먹고 싶었지만,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할 리는 없습니다. 타이노족 사람이 본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8시간이나 10시간 동안 노동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이사벨라 여왕에게서 돈을 받아 아메리카로 왔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것이 좋은 투자라는 것을 여왕에게 증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라서, 스페인으로 돌아갈 때는 금과 은으로 된 장식물을 가지고 가면서, 거기다가 타이노족 원주민 2명을 데리고 갈 참입니다. 그리고, 이사벨라 여왕에게 '신세계'에는 풍부한 '부'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금이 있고, 은이 있고, 그리고 노예도 있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콜럼버스는 여기에서 노예제를 만들고,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였습니다. 타이노족은 거의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칼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칼과 갑옷으로 무장한 스페인 사람들이 몹시 두려웠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곧바로 노예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이노족은 노예가 되려고 하지 않고, 자꾸 죽어갑니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병으로 죽거나 또는 버티고 앉아서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여튼 죽어갑니다. 울화병으로 죽기도 하고, 또는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노예로 사는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이노족은 백년 사이에 전멸하였습니다. 지금은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노동력이 없어지니까 아프리카로부터 사람들을 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카리브해의 섬에서는 어디서든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현재, 카리브해 섬에는 원주민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흑인이거나 흑백 혼혈입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도대체 어디서, 누가, 스스로 이 장시간의 노동제도를 선택했는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예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를 넓게 생각해보면, 관리된 10시간 또는 12시간을 매일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일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극히 부자연스러운, 무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생활방식입니다. 공장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위로부터의 명령에 따라 일합니다. 재미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회사가 결정한 것이니까 하는 일입니다. 가끔 흥미로운 게 있어서 그것이 즐겁거나 재미있다고 생각되면 극히 행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이며, 기본적으로는 돈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부자유스러운 것이라는 것은, 이러한 노동의 조직화, 노동형태에 처음 마주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곧바로 이해했습니다. 그러한 노동생활을 시작한 제1세대와 제2세대까지는 다양한 반대운동을 일으키고, 저항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생활방식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급진적인 노동운동은 임금노동의 제1세대, 제2세대 때의 운동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에 이르러서는, 벌써 그 기억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미 몇 세대 전부터 세계의 구조로 되어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동방식이 세계의 원리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해도 꿈쩍도 않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닌가 합니다.
현재의 방식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마치 '상식'이 된 것 같습니다..."
-5장 '누구도 이처럼 노동하지 않았다" 일부 옮김
"...'가난'이라든가, '부유함'이라든가 하는 개념이,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하는 러미스 교수(저자)의 견해는, 따져볼수록, 탁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의하여 결정하여 마땅한 것을,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라고 오인, 착각함으로서, 우리의 개인적, 집단적 삶에 본래 내재되어온 참다운 '풍요로움'의 가능성을 파괴해왔던 것이다. 이제 늦게라도, 이러한 새로운 깨달음에 우리가 얼마나 겸손하게 응답하느냐에 우리와 다음 세대의 운명이 달려있음이 분명하다..."
-역자 후기 일부 옮김